"주님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간은 정말 불타는 여름이었습니다. 뒷마당에 온도계가 있습니다. 토요일 낮2시, 온도계 온도가 99도였습니다, 교육관 3층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지붕 밑이다 보니 뜨겁습니다. 온도계를 보니 110도였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하지만 본당 온도는 75도였습니다, 에어컨이 돌아가니 시원합니다.  VBS를 하는동안 아이들의 모습은 똑같지 않습니다. 밖에 나갈 생각을 안하고 교회안에서만 노는 아이들도 있고 그래도 그 더운 밖으로 나가서 뛰어 노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놀아도 다 자기마음대로 놉니다. 그걸 보면서 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교회안에서 가만히 놀든지 교회밖에서 마음껏 뛰놀든지 주안에서만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어떤 행사든지 봉사자의 수고가 많이 따릅니다. 점심먹고 놀이준비를 위해 선생님들이 물풍선을 만들고 그릇에 담아놓았는데 선생님들이 어디 다녀오는 사이에 5분만에 없어졌습니다. 그 잠깐 사이 일어난 일을 제가 보았습니다. 조그만 아이는  양손에 물풍선을 하나씩 쥐고 세상을 다 가진듯 돌아 다녔고, 힘쎈 아이는 옷에 있는대로 가득 줏어 담고 신나게 던져 놉니다. 그러다가 어떤 아이는 물호스까지 흔들며 놀려고 합니다. 물풍선이 다 떨어지니까 선생님들이 여분으로 남겨놓은 물풍선까지 찾아내서 자기마음대로 물을 담아 놀려고 합니다. 허락도 없이요. 그걸 본 선생님이 가만히 안 있습니다. 'No'라고 합니다. 마음대로 놀되 어느 선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안에서만 놀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통제를 해야지 안그러면 엉망이 됩니다. 제가 왜 가만히 보고만 있었냐고요? 제 마음은 아이들이 다치지만 않으면 오케이입니다.  물풍선을 전기플러그에만 던지지 않으면 오케이입니다. 또 선생님들이 있으니까요. 저까지 이래라 저래라 그러면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냥 큰 아이들보고 '애들 잘 봐라' 이 정도지 솔직한 제 마음은 저 아이들이 교회안에서 노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다만 기도합니다. 저 아이들이 주님을 알게 해달라고요. 알아야 어떻게 살든지 세상에서 제대로 살기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 똑같습니다. 다 자기마음대로 삽니다. 저 자신도 주님을 알았으니까 이 정도지 만약 주님을 몰랐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아마 제 마음대로 살다가 큰 사고를 쳤을 것입니다.

뒷마당에 어제까지만 해도 큰 물미끄럼틀 물튜브,등등 놀이기구가 잔디밭에 가득했지만 끝나면 결국 다 치워버립니다. 오늘 잔디밭 위에는 깨끗합니다. 그러나 남는 게 있습니다. 놀이터입니다. 교회안에도 많은 분들의 수고로 VBS를 위해 꾸미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멋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VBS가 끝나면 다 치워 버릴 것입니다.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저는 남은 놀이터를 보면서 참 감사하고 동시에 아쉽고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왜냐고요? 아이들을 위해 우리 수준에 저렇게 까지 할수 있구나, 아이들을 우선으로 생각했으니까 저런 걸 만들수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놀이터를 보면 항상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좋지만 꼭 이렇게 돈을 써야 하느냐 마느냐로 리더들의 의견들이 갈렸고 결국 교회분열의 씨앗이 된 것이 바로 놀이터였기 때문입니다. 그 리더들은 지금 교회에 안계십니다. 그러나 놀이터는 남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런것 같습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고, 할 수 없는데 하고 싶고, 그 방법도 가지가지라서 도저히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죄인인 사람안에서는 나뉠 수 밖에 없기에 저는 놀이터를 보면서 감사하기도 하고 아쉽고 속상하기도 한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편에도 묶이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안에서는 묶이거나 둘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주안에서는 하나가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나는 볼수 없습니다. 남들은 내 문제를 다 아는데 자기만 모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안에서는 나를 볼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정말 놀랍고 감사한 것은 주 안에서는 그 죄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자유가 아닙니다. 이 자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생긴 것을 압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성경말씀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게 됩니다. 진리를 아는 순간 내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참 진리와 참 생명을 알기에 무엇이 행복하게 사는 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두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말씀이 믿어집니다.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내 생각대로 안되고 내가 왜 미국에 왔지하고 혼란스러워 하던 때에 잠언 16:9절 말씀이 저의 마음을 강타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에 충격과 함께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발로 미국에 온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계획과 생각대로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지금까지 주님이 이끌어 오셨습니다. 주안에서 보니까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진리를 알고 나서 제 삶의 방향을 주안에서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운명이나 우연은 없습니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니까 돌아가는 것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때로는 자꾸 힘들고 어려운 일이 계속 되면 답답하고 아쉽기도 하고 운명인가 싶습니다. 때로는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기도 하고 우연이겠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보면 달라집니다. 자유합니다. 생각이 바뀝니다. 주안에서 행복이 있고 주안에서 자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주안에서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자기마음대로의 가짜 자유와는 천지차이의 진리안에서 진짜 자유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가졌을 때 그 사람은 변화된 것입니다. 참변화란 주의 사랑과 능력으로 변화 됩니다. 그래서 저는 고백합니다. “나를 먼저 사랑해 주시고 찾아오신 주님, 그리고 내가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 진리를 알수록 주님을 더욱 더 알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