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을 벗겨 주옵소서


나라가 어지럽고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보기보다 사역을 하기 보다 먼저 주의 얼굴을 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없는 세대속에서 자칫 세상소리를 듣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세상은 진리를 없어서 깜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고 말해야 합니다. 내가 진짜 알고 믿는 것을 말하려면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할 때 말해야 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자 진밖에 회막을 치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은 나오라고 외쳤습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주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특별히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 무너지는 성벽을 붙잡고 애통하며 울며 기도하는지 하나님은 보고 계실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귀를 막고 눈이 멀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사탄의 궤계는 오직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벗어날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매스미디어가 발전하고 저마다 핸드폰을 갖고 있어서 프레임으로 사람을 잡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는 것 가지고는 사탄의 궤계와 선전선동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이 얼마나 똑똑하고 열심이 특심인 사람이었습니까? 그런 그도 자기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줄도 모르고 자기가 하는 일들이 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인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빛이 임했을때 비로서 자기가 눈먼 사람임을 알게 되었지요. 무명의 제자에게 안수를 받게 하시고 겸손해졌을 때 눈껍풀을 벗겨주셨습니다. 다시 뜬 눈으로 세상을 보니 세상이 얼마나 놀랍고 새로운지 자신과 세상의 영적현실을 새롭게 보았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눈으로 현실을 보는 것이 영적현실입니다. 진짜로 변화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여주시는 영적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욥이 고백한 내가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 눈으로 뵈옵나이다했던 그 고백이 내 속에서 터져 나올 때 생명의 중보기도가 일어나고 참변화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강도를 당하고 도둑이 들어도 깨어 있는자가 가정과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옛날 대성연탄이 유명했습니다. 그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안주인이 권사님이었습니다. 깨어 보니 집안에 도둑이 들어서 다 훔쳐갔습니다. 권사님은 놀란 자식들을 불러 모아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자 얘들아 다같이 감사기도를 드리자 오늘 우리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려고 다 가져가게 하셨다. 너희들도 아빠가 대성연탄사업하고 엄마가 성가대를 서고 걱정없이 지상낙원같이 살다보니 어려움을 모르잖니? 하나님이 우릴 영적으로 깨우시려고 이런 일을 주셨다.” 강도프레임은 이렇게 깨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판단하고 정죄하고 자책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주의화되고 종교화 된 것을 바꾸려고 사람들이 개혁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혁하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보수하거나 개혁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셨고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도록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주셨고 서로 사랑하라고 새로운 법을 주셨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세상을 향한 눈껍풀을 벗기시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깜깜할 때일수록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끓고 하늘을 우러러 주의 얼굴을 구할 때입니다. 주여, 눈꺼풀을 벗겨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