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제 책상위에는 로댕이 만든 조각상인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꾸 봐서 그런지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로댕이 이 조각상을 만든 동기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지옥의 문이 있는데 어떤 미술관에서 그 지옥의 문을 설치하겠다고 관련된 석고상을 청동으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에 앉아서 그 아래 지옥으로 떨어지는 군상들을 내려다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저는 그걸 알고 이 조각상을 산 것이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긍금했습니다. 진짜 뭘 생각하고 있었을까? 친구들끼리 내 팬티 어디로 갔지? 하고 팬티를 찾고 있었을꺼라고 엉뚱한 생각은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로댕의 인생은 그렇게 생각많은 품위있는 인생은 아니었고 또 말년에도 온갖 병과 치매로 고생을 했다고 하고 마지막 순간도 발작하며 별로 좋지 않게 떠났다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별로 귀에 안들어 왔지요. 지금 생각하면 로댕이란 사람은 관심없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냥 석고상처럼 그 고뇌가 얼마나 컸으면 울퉁불퉁한 근육 좀 봐 저렇게 힘이 들어 갔을까? 생각하며 그래 고뇌도 힘있게 해야 돼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한거지요. 훗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도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석고상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기도해야지. 생각도 온 힘을 다해 생각하고 기도도 온 힘을 다해 힘있게 기도해야 돼 생각하고 큰 소리로 기도한 계기도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은 무섭습니다. 생각한데로 되기 때문이지요. 저에게는 자주 부른 추억의 노래가 있는데 해바라기가 불렀던 “갈수 없는 나라”입니다.  대학생인 그 당시 주먹을 불끈쥐고 부른 노래도 있고 아침이슬같이 장엄하게 부른 노래도 있었지만 80년대의 우울한 시대에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찾았지만  시대를 보면 갈수 없는 나라같아서 방황하고 헤매던 시절이고 비슷하게 불렀던지 앵콜의 18번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잘 안 부릅니다. 이제 저에게는 갈수 없는 나라가 아니고 갈수 있는 나라로 바뀌었으니까요. 대신 찬송가와 복음송을 많이 부릅니다. 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주님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 때도 주님은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며 나라와 세상을 향해 고민하는 저에게 뭘 그렇게 고민하느냐? 는 말씀을 주셨던 것 같았습니다.

또 목회를 할 때도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걱정하고 기도할 때 똑같이 뭘 그렇게 고민하느냐 다 내게 맡기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항상 그 귀결이 하나님이면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세가지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첫째 내 감각도 틀릴 수 있으니 의심한다.

둘째 내가 이전에 증명된 모든 명제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의심한다.

셋째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진짜가 아닐 수 있으니 내 생각도 의심한다.

역시 철학자입니다. 그런데 내 감각,내가 증명한 명제나 생각까지 모든걸 의심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은 내가 계속 의심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깨달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가 생긴 겁니다.

이걸로 끝나는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있었던것 아니야? 그건 내가 존재는 하지만 불완전한 존재라는 거지. 그렇다면 불완전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완전한 존재가 있으니까 내가 존재하는 거잖아? 맞아 완전한 존재가 있는거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겁니다.

런데 또 그렇다면, 불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완전한 존재를 생각해 낼수 있지?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또 얻은 결론이 내가 내가 완전한 존재를 생각하고 있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지. 즉 불완전한 존재인 내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거야 그렇다면 그것이 어디서 왔을까? 완전한 존재이신 하나님이 알려주신것이다. ! 불완전한 존재인 내가 완전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다는 증거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던 데카르트는 자신의 감각,지식,생각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의심도 되고, 고민도 되고, 세상 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습니까?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함께 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