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기름부으심은 성령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역사로 거듭난 자에게 성령님이 나타나셔서 실제로 역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도 기름부으심을 받으시고 메시야로서 권능과 권세있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꿈을 꾸며 기도합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거듭났습니다.  그 전까지는 교회는 다녔지만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친구보러 다녔습니다. 주님에게는 관심조차 없던 나를, 탕자같은 저를, 주님이 찾아 오셔서 만나주신 후 베풀어 주셨던 그 놀라운 기름부음의 역사를 기억하며 그 역사가 저에게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거듭남과 기름부으심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난 신앙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지 못하고  부모따라 교회를 다닐 수가 있습니다.  신앙은 없는데 부모 따라 할 수 없이 따라 나온 것입니다. 주님 보고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보고 친구보고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이 대학을 가면 거의 대부분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는데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청년의 때에 제가 늦게 믿었기 때문에 청년부에서 만난 목사님 자녀들이나 장로님과 권사님 자녀들을 볼 때 제네들은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고 잘 아니까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부러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기대와 상상외로 구원의 확신도 없고 생명력이 없는 율법적인 신앙이든지 아니면 교회를 나오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청년이 많음을 알면서 크게 놀란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무엇을 본걸까요? 저는 그 충격 후에 사람들이 보고 인정하는 것과 예수님이 보고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고 주님의 눈으로 보기를 기도했습니다.

거듭나면 막 태어난 애기같습니다. 어린아이같은 마음이 됩니다. 영적으로 눈이 떠집니다. 저도 거듭나서 눈을 뜨니까 새들이 노래하고 나무들이 찬양한다는 간증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죄가 더 민감해지고 제 옛사람의 나쁜 습관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모하는 마음이 생길 때 주저하지 않고  구하고 찾고 두드렸습니다. 틈만나면 기도했고 무슨 집회가 있다하면 쫒아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위싱톤이든지 시카고이든지 아무리 먼거리에 집회가 있다라고 해도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미친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주님은 밤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던 밤체질인 저를 새벽에 깨우시고 기도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영적세계를 열어주시고 환상을 보고 꿈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하시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부흥회를 해도 사람들이 오지를 않습니다. 모임을 폐하고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때를 생각하며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다시 사모합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듭나면 기도가 하나님중심으로 점점 바뀝니다.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애기같은 기도는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애기를 자세히 보세요. 사랑스럽지만 다 사랑스러운가요? 애기가 얼마나 고집세고 자기밖에 모르는지 잘 아시지요. 저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는데도 세상적인 생각과 습관은 그대로였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는데 겉으로 보면 나쁠 것이 없는 기도같았지만 돌아보면 나 중심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보다는 그저 눈에 보기 좋은 것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부르시는 것 같았지만 저는 교회에서 고생하는 목사님보다는 기왕이면 장로가 되어서 폼도 잡고 세상 것도 즐기면서 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가 우선순위가 잘못된 나를 위한 기도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기를 시작하면서 기도가 점점 하나님 중심으로, 주의 뜻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도하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고 지금도 기도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거듭나면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고 하늘의 복을 받기를 원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범사가 잘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항상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부자가 되면 타락하고 주신 복이 저주가 될까요? 이유는 처음부터 시작이 나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가정에 갑자기 큰 돈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았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집을 사라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우리를 위해 쓰지 않고 전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그

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다 썼는데 실제생활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어려워졌을 때 재정이 약해졌을 때 집이 없어서 교회에 부담이 되고 목회에 전념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큰 혹독한 댓가가 있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우선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 부자들이 왜 타락하는지 조금은 이해했습니다. 거듭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부자가 되면 정체성에 큰 혼란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사람 대 사람으로 안 보고 돈으로 본다는 사실을 알 때 얼마나 큰 상처와 분노를 가지는지 느꼈습니다. 나를 목사로 안보고 돈으로 본다는 사실에 경악을 했습니다.

실제로 돈의 힘은 컸습니다. 사람들이 돈에 움직이고 실제로 돈에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돈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돈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쓴다고 생각하니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돈을 벌거나 나를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면 내가 원하지 않는 건 낭비로 보이고 돈쓰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를 볼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건물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1불로 거져 받은 교회인데 어떻게 팔겠습니까? 하나님의 때에 거져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잘 꾸미고 잘 닦고 고쳐서 주님이 주라 하실 때 기쁨으로 줄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도 자기 신앙생활에 급급해서 전도도 못하고 선교할 생각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주의 마음은 알기는 압니다.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능력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세상유행에 휩쓸리고 세상풍조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육신이 약하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성령보다 육신이 더 강하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강하셔야 합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려면 기름부으심이 계속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약하고 육신이 강하면 결국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은 없는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강하면 놀라운 변화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름부으심에는 실제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참 변화가 있음을 체험한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녀도 세상에 즐기던 것을 끊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당장 끊기를 원했지만 말 그대로 마음에는 원이었지요.

예를 들어 그렇게 좋아하던 술,담배를 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되었습니다. 육신이 약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고는 하루도 아니고 한순간에 끊게 하셨습니다. 제가 다 놀랐습니다. 이게 뭐지? 내가 어떻게 된거지? 그 때 이 후 지금까지도 담배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나고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얼굴이 빨개지고 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리는 나를 보면서 이건 내가 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름부으심에는 참변화가 있습니다. 저는 변화를 주셨지만 실제의 저의 모습을 알았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고집쟁이고 자존심이 강한 자였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모를 때에는 제 힘으로 감추고 살았습니다. 안 그런척 했습니다. 겉으로는 청년부회장을 하고 새벽기도를 드리고 예배란 예배는 다 참석하고 성가대를 하고 찬양팀을 하고 남들이 볼 때는 저 청년은 정말 헌신적이었기 때문에 남들이 볼 때는 주님을 위해 헌신한  형제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했던 저의 인생은 영락없이 내가 주인노릇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겉사람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속사람의 변화임을 철저히 알게 하셨습니다. 그 후 부터 감추지 않고 정직하게 바라보고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주님께 나아갔더니  그런 저를 통하여 하나님은 더 깊고 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걸 압니다. 그 때 주님이 어린아이같이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고 담대했던 모습, 부끄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내려놓고 보혈을 의지하고 긍휼을 구하는 저를 지켜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셨는지요. 주님은 꾸짖지 않고 부끄럽다고 하지 않으시고 더 기름부어주시고 더 놀라운 일을 열어 주셨던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변화를 원하고 계십니다. 빈자리도 채우고 성장하고 발전되어야 하겠지만 우리 교회를 바라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셨던 그 때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주여, 다시한번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기름부으심은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저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기도에 힘쓰다가 언제부턴가 기도가 줄어들고 열정이 식어지면서 내 경험으로 내 힘과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없는 그런 신앙생활이 율법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환란을 당하게 하시며 다시 기도하게 하시고 연약함을 보게 하시고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다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얼마나 감사한지요.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주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앞으로의 미래도 우리 주님이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위해 다시 살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름부으심은 누가 주인이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주인노릇할 때는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내안에서 하나님이 주가 되실 때 부어 주십니다. 내가 주인노릇하면 기름부음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마귀의 유혹을 받고 마귀의 종노릇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제가 청년일 때 CCC교재로 공부했는데 그 때 본 그림이 있습니다. 의자가 두 개가 있는데 한 의자는 내가 앉아 있고 주님은 내 발 밑에 있습니다. 또 한 의자는 주님이 앉아 계시고 내가 그 발 밑에 있습니다. 내 인생의 보좌에 누가 앉아 있느냐 물어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할 힘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이 다스리시지 않으면 주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압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내 길을 가는 마이웨이 인생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다스리시지 않으면 내 인생은 주의 것이라는 알기는 알면서도 시간도 물질도 모든 것을 내 맘대로 사용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고 주님이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말씀도 알기는 알았지만 여전히 저는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기를 쓰는 인생의 모습이었습니다.  성령이 다스리시지 않으면 기도는 주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면서 여전히 기도내용은 내 주장, 내 소원, 내 뜻이었습니다. 성령이 다스리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해도 내가 높아지고 내가 성공했고 내가 이랬고 내가 저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원래 간증이란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높여야 간증이 아닙니까? 그런데 알면서도 간증을 그렇게 말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참 기가 막힌 일이지만 알고보니 그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감쪽같이 양의 탈을 쓴 사탄의 속임수에 당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그걸 깨닫고 드린 저의 기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주여, 다시 한번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이제는 나를 압니다. 내 인생의 보좌에 내려 와야 하는데 내가 내려오겠습니까? 안 내려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만약 나를 몰랐다면 또 제가 뭔가 해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다들 그러는데 유별나게 왜 그러느냐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만 두지 않으실 것도 압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다고 하늘에서 주실리는 없겠지요. 이걸 바꾸어야 하는데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요? 그래도 저를 깨닫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제가 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리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여,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밖에 도울 힘이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였습니다. 

기름부으심에는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핵심은 내가 기름부음을 받을만한 그릇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그릇에 기름을 부어주실까요? 지금 사탄의 공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라면 정말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중보기도자가 절실합니다. 다 무너졌을 때라면 그 무너진 곳에 서서 대신 싸워주고 위해서 피나는 영적전쟁을 벌이는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 납니다.  바로 예수님의 마음인데 그 마음으로 기도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다면, 그 예수님의 그릇은 어떤 그릇이었길래 하나님은 기름부으심을 물붓듯이 부어주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그릇은  말씀에 순종하는 그릇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실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기름부음을 물붓듯이 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으심을 받고 광야에서 금식하시고 유혹하는 사탄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릇은 겸손함의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겸손함으로 고개를 숙여 인간인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였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물붓듯이 에수님께 부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충만한 기름을 받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구속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릇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의 그릇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자기 힘으로 얼마든지 사역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지만 오직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힘을 의지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름부으심을 물붓듯이 부어 주셨고 주님은 그 충만함을 받고 절대적인 중보기도자로 십자가를 지셨고 전쟁에서 이기시고 포로된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기름부으심이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앞이 캄캄하고 환경과 형편과 처지가 어려울 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친교를 더 신경써야 할까요? 으샤 으샤하며 분위기를 잡아야 겠습니까?  대화하고 들어주고 참고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계속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은 기름부으심을 생각하며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약속하신 말씀처럼 약속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고 성령충만할 때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다스려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 권세있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겉사람도 필요하지만 속사람이 본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같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각성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3년동안 예수님을 쫒아 말씀을 배우고 수많은 능력을 체험하고 제자훈련을 받았는데도 교만하고 시기 질투하고 주님을 배반하고 버리고 도망했고 먹고살겠다고 세상으로 가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고 결코 믿음의 길에서 뒤돌아서지 않았고 죽기까지 권능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감사의 계절에 이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돌아보며 더 깊고 풍성한 감사가 있었으면 합니다.

성도여러분, 나 따로 주님 따로의 삶을 바꾸는 길은 오직 성령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환경과 형편과 처지가 아무것도 할수 없을 때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기름 부으심으로 다시 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