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날씨는 완전 가을 분위기입니다. 가을바람에 낙엽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중동에 이스라엘과 아랍일부국가간 국가 수교협정인 ‘아브라함 협정’이 있었습니다. 세계가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서 예루살렘을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무엇일까요? 2005년에 나온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가 나옵니다. 12세기에 실제적 역사적 배경인 2차 십자군 전쟁가운데 예루살렘성을 이슬람교도는 빼았으려고 대군을 동원해서 공성전을 벌리고 기독교인들은 성을 지키려고 수성전을 처절하게 벌립니다. 밀고 밀리는 혈투끝에 협상을 하지요.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넘긴다면 백성들의 안전한 퇴거와 생명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고 발리안은 예루살렘을 포기합니다. 주인공 발리안이 살라딘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이슬람군주 살라딘이 대답합니다. 낫팅(Nothing)! 그리고 돌아서다가 다시 한마디 합니다. 에브리팅(Everything)! 


낫팅? 종교의 민낯과 인간의 탐욕과 폭력과 전쟁, 죽음의 헛됨을 통해 낫팅이란 말이 조금은 다가오지만 에브리팅은 무엇일까요? 그가 알고 답하는 것일까요? 사람이 전부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버릴 수도 있고 예루살렘이 전부이기 때문에 나의 전부를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아니고 헛된 것이 되게 하고 또 전부이고 가치가 있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원수같이 싸우며 전쟁과 평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사야2:3에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오고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2:8에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는데 거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고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명하시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갈빗대로 돕는 배필인 여자를 만드시고 한 몸인 가정을 이루게 하셨지요

그런데 간교한 뱀이 나타나 꼬임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말지요. 3:8에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거니셨을 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나무 뒤에 숨었을 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은 “내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만 숨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네가 벗었다고 알려주었느냐?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먹었느냐?” 묻습니다. 이실직고합니다. “먹었나이다” 그러나 남 탓만 합니다

결국 하와를 꾀인 뱀도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도 저주를 받았는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창3:15절에 ‘원시복음’이라고 하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메시야의 약속을 하시지요. 가죽옷도 입혀 주셨습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있었다면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았으니 생명나무도 따먹을까봐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쫒아내시고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실과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언약궤 위에 보면 그룹들이 날개를 펴서 언약궤를 지키고 있습니다

26:11-12에 하나님이 “장막을 세우고 행하여(걸으시고)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막(=성전)의 의미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My dwelling place)을 말합니다. 8:26에 레위인에게 성막에서 봉사하고 모시는 직무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의 예루살렘은 에덴을, 성전은 동산을 뜻합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으로 말씀하시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의 몸인 내 교회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삼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역할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서 2:9에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선언합니다. 건물이 성전이 아니고 내가 성전이라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닙니다. 지키고 섬기고 모셔야 합니다.

 

다니엘이 왕의 어명에 왕외에 다른 신들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져서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사방에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가득 찬 상황입니다. 다니엘이 엎드려 기도하면 바로 고발하고 잡아갈 태세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그냥 하나님이 내 마음에 계시니까 속으로 기도했다면 다니엘에게 아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니엘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굳이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을까요? 습관일까요? 보란듯이 한 것일까요? 


다니엘은 하나님을 향하여 섰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시고 거하시는 곳이 예루살렘이기 때문입니다. 왕도 대적도 자기목숨도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에브리팅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 즉 계시의 말씀앞에 선 것입니다. 말씀을 믿으면 죽어도 삽니다.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고 여시면 닫을 자가 없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전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세상이 혼란스러운 때에 이런 신앙이 참 귀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더라도 이런 마음으로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성도여러분 한 주간도 건강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