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장영희라는 분이 소아마비장애를 극복하고 영문학교수가 된 적이 있습니다.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미국에 유학가서 6년을 공부하고 2년동안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했는데 그 당시 컴퓨터가 많지 않았던 때라 어렵게 논문을 타이프로 다 쳐놓고 차 트렁크에 두었는데 그 안에 물건들이 몽땅 도둑맞을 때 그 논문도 없어졌습니다. 순간 그 동안에 함께 하신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고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답니다. 어느날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1년만에 다시 논문을 탈고하면서 논문 헌사에 쓴 글은 감사였습니다. 먼저 부모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놈의 웬수같은 도둑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내 논문원고를 훔쳐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도둑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한마디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사람을 자꾸 넘어뜨리십니다.” 어려움 속에 깨달은 지혜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런 일을 겪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교수님은 그 후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혼자 외롭게 살던 성도님이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에 가서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의 영접을 받는 순간 문득 자기가 걸어온 한평생을 뒤돌아 보았답니다. 보니까 자기가 지나온 길에 발자국이 나 있는데 두 줄이 나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 가족도 없이 외롭게 살아왔는데 어째서 발자국은 두 줄입니까?”하고 주님께 여쭈었더니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항상 너와 함께 걸어 왔느니라” 너무 감사해서 그 발자국을 다시 보는데 두 줄로 있던 발자국이 한 줄일 때가 있었습니다. 천국에 그냥 들어가려고 하다가 속으로 그렇지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데 저 땐 주님도 날 잊으셨을 때일꺼야 하고 슬쩍 한번 더 물어 보았답니다 “저기 발자국은 한 줄로 나있네요. 저 시간에는 주님께서 어디 가셨나요? 저를 버리신 건 아니에요? 어째서 저기는 한 줄의 발자국뿐입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때는 네가 너무 괴로워하고 힘겨워해서 내가 너를 업고 걸어 왔느니라.” 그 말을 듣고 꿈을 깼습니다. 그 성도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한참을 울었답니다. 천국에는 눈물도 없고 외로움도 걱정도 다 없어질 텐데 그 성도처럼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리 마음도 그렇게 수시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뒤돌아 보면 기적같이 주님이 도와주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늘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을 보고 알면서도 형편이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지면 입에서 불평이 나오고 이기적으로 변해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 교회생활입니다. 성도여러분, 은혜로 늘 충만하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교회가 겪는 많은 문제의 해답입니다. 저도 성도들이 아프시거나 어려우시거나 오랫동안 안 보이실 때가 있을 때 하나님이 치료해주시고 도와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자꾸 근심이 되고 염려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님이 업고 걸어가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걱정되고 괴롭고 외로울 때에 주님은 우릴 붙잡고 다시 시작하심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좌절하고 불평하고 걱정하고 힘들어 할 일이 아니라 일어나 주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면 다 잘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