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가고 벌써 다음주면 5월입니다. 주가 어린이날주일이지요. 부활신앙을 생각하며 마음 아픈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유대계 폴란드인 필명 야누스 코르작, 본명은 헨릭 골드슈미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명한 소아과의사로 편하게 있었지만 34세인 1912 의사를 그만두고 고아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동작가,교육가로 헌신했는데 이유는 아이들의 병을 고쳐주어도 아이가 다시 가는 곳은 불우한 환경인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아예 직접 고아원을 시작했답니다. 그가 바르샤바의 교육대학에서 아동심리학을 가르칠 어린이병원 엑스레이실에서 학생들에게 첫강의를 하는데 코르작은 데리고 어린아이를 검사장치 뒤에 세우고는 콩닥콩닥 뛰는 아이의 심장을 스크린으로 보여줬습니다. “지금 영상을 앞으로 절대 잊지 마세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기 전에, 어떤 벌이든 내리기 전에, 겁먹은 아이의 심장을 마음속에 떠올리세요. 코르작은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출입문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2차세계대전 발발후에는 특히 유대인 전쟁고아를 모아 키웠고. 그렇게 모인 고아들이 192명이나 되었습니다.전쟁중에 모든 것이 부족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 고아라 해도 교육이 필요하고 케어해야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결심하고 그는 다음과 같은 구인광고문을 붙였습니다 “고아원에서 근무할 교사를 구함. 비겁하거나 우둔하지 않아야 . 월급은 없으며 하루에 식사를 제공할 있음. 그러나 그것마저 없을 수도 있음. 어려운 전쟁통에 주변에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를 찾아와 봉사하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10여명과 아이들을 돌보았답니다.독일군이 폴란드 바르샤바를 침공했을 그를 돕는 후원자가 코르작박사를 구하기 위해 독일군을 매수하고 스위스 여권까지 마련하고 찾아와서 “선생님은 앞으로 일이 많습니다. 피신하십시오”라고 했을 그는 “무슨 , 이것 말고 다른 무슨 ? 이라고 말하며 그곳에 끝까지 남았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훌륭한 분이지요. 그런데 독일군이 잔인하게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지역이 아비규환이 되었을 그는 고아원을 살려내려고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1942 8 6 유대인이라고 고아원 아이들을 끌고 가려고 독일군이 들이닥쳤습니다. 아이들은 공포에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코르작은 아이들을 달래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소풍가니까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 준비하고 모여라” 아이들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 물병, 장난감을 들고 모였고 마치 소풍을 가는 남자아이는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그렇게 흐트러짐없이 당당하게 192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행진하며 가스실수용소로 가는 기차 앞에 섰는데 독일장교가 그에게 상부의 명령을 전해 주었습니다. “원장님 위에서 당신은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빠지세요. 그러나 그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차를 타면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기차를 처음 타서 무서워하면 누군가 손을 잡아줘야 하지 않겠나 결코 아이들을 떠날 없네 마지막 순간까지…” 기차는 100만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던 악명높은 트레블링카수용소로 가는 기차였습니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영화에는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극도의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코르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얘들아, 너희들이 어디를 가든 선생님이 너희들과 함께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라. , 우리 함께 기도하자!" 그리고 그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고 기도를 마친 후에 아이들을 향해 물었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안해 졌니?" 아이들이 힘차게 대답했답니다. "! 편안해요."그는 그렇게 아이들을 달래고 안심시키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스실까지 따라가 주었고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2천년전 십자가와 부활이 실화이듯이 80년전 코르작과 아이들도 실화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기념관> 앞마당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행진하는 코르작(Korczak) 동상이 있습니다. 코르작의 마지막 모습을 고아원 교사 미하우 브루블레프스키는 코르작의 생애를 복원하려고 취재하던 리프턴작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말이죠. 다들 선생님이 아이들과 열차를 타기로 결정을 그렇게 대단하게 얘기하는데, 선생님은 평생 그렇게 결정을 하며 분이에요. 소아과 의사가 되기로 결정도 그렇고, 의사와 작가 일을 접고 가난한 고아들을 보살피기로 결정도 그렇고, 유대인 고아들과 함께 게토에 들어가기로 결정도 그렇고. 트레블링카에 아이들과 같이 가기로 마지막 결정도, 그분이 원래 그럴 사람이었어요.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호들갑 떠는지 선생님이 보면 이해를 못하실 거예요. 성도여러분, 부활신앙을 가지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간도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