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쁜 일이 올 때는 고통과 아픔이 따르는 산고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십자가와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는 말처럼 놀고 싶고 자고 싶은 마음을 참는 고통이 따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이민자들이 미국에 와서 돈을 벌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고생한 것을 말하자면 책을 몇 권 써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 와서 보니까 아이들이 3시나4시면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갑니다. 그래서 대학수능시험에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하며 고생하는 한국의 학생들을 불쌍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류바람이 불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의 교육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교육과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신비합니다. 고생스럽지만 한국인은 열심히 사는 민족이기에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들 속에 감추어진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한국은 마지막 시대에 큰 일을 할 것입니다.

 

보통 천재로 태어나면 고통이 없고 쉽게 살 것 같고 미국에서 태어나면 잘 살고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대로 천재는 천재대로 아픔이 있고 한국에 살든지 미국에 살든지 그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왜 누구에게나 나름의 고통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해산의 수고라는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기독교인은 세상과는 다른 고통과 아픔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성경적 사고로 인식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깁니다. 

 

또한 우리는 해산의 수고가 생긴 이유가 죄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 했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죄의 고백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남 탓을 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남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주인공은 노파의 돈을 빼앗아서 수백명을 위해 쓴다면 오히려 이득이 될꺼라고 생각하고 노파를 죽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찾아온 고통 때문에 훔친 돈을 땅에 묻어버립니다. 그리고 우연히 살해 장면을 목격한 노파의 동생까지 살인하게 됩니다. 그러다 한 여자에게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자수합니다. 감옥생활을 끝내고 여자와 함께 어느 날 저녁, 자신의 죄를 깨닫고! 구원을 향해 서면서 소설이 끝이 납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죄를 깨닫기 까지 또한 죄의 고통이 끝나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마치 죄로 인해 사망이 찾아왔고 죄를 고백하지 않은 아담과 하와의 고통이 결국 가인이 아벨을 살인하게 되고  죄의 악순환으로 결국 심판에 이르는 창세기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죄를 죄라고 하지 않고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고 하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성경적인 사고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죄가 용서받고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며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생명나무를 먹고 살던 아담과 하와가 죄와 사망으로 끝나지 않도록 생명보존의 방법으로 아이를 낳게 하셨습니다. 낳고 낳고 그래서 우리가까지 생긴 거지요. 그러나 여자에게는 죄의 벌로 해산의 고통을 주셨고 남자에게는 땀 흘려 일해야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고통을 주셨지만 또 놀랍게도 생명에 대한 신비로 고통을 잊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않는다(16:21)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보통 “내가 어떻게 낳은 자식인데” 말하잖아요. 또한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 했습니다.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열리면 어떤 고통에도 갇히지 않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가끔 말씀은 따로 놀고 인간적으로 꼼짝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공짜인 줄 압니다. 누가 공짜로 대신 섬겨주기 바랍니다. 그러나 공짜 좋아 하다 가는 큰일 납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해서 먹고 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게 하셔서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가정을 깨트리고 생명질서를 파괴하는 일로 우리들을 공격하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기가 막힌 방법으로 반드시 역전 시키실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또 다른 소설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지옥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에서 ‘지옥은 특정공간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 것처럼 말세가 되면 이 세상이 먼저 지옥을 맛보게 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경고한 것처럼 또한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것처럼 세상은 점점 사랑이 식고 부정부패와 온갖 죄악으로 점점 더 고통스러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신비를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고통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고통을 주면 우리가 낙심하고 포기하고 자기 말을 들을 줄 알지만 하나님은 고통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하셨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아무나 찾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기쁜 일에는 먼저 고통이 따르도록 순서를 정해 놓으신 것처럼 된 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치는 사탄 마귀가 통탄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를 누가 알겠습니까? 이 놀라운 신비를 기억하고 사랑과 생명의 복음을 더욱 세상에 전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한 영혼이라도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되찾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개월째 계속되고 있고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문제는 전쟁의 여파로 석유가와 식량가가 급등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며 전세계에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봉쇄로 인한 공급망의 혼란과 함께 어려움이 가중되어 전세계 경제가 비상이 걸리고 침체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까? 왜 세상이 이렇게 고통이 많고 사람들이 악해질까의 의문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하박국처럼 믿음으로 깨어나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욥처럼 고통속에 갇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승리해야 할 때입니다. 

성도여러분, 한 주간도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