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에는 육체의 쉼, 마음의 쉼, 영혼의 쉼이 있습니다. 사람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지치게 됩니다. 지치면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쉼을 위해서 휴가를 내어 쉬고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혹은 자기 취미생활이나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정신이 쉽니다. 쉬면서 재충전합니다. 그러나 휴식과 안식의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 안식은 영혼이 쉴 때 생깁니다. 영혼의 쉼은 하나님나라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안에서만 얻어집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이 세상에 안식이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안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쫒겨난 이후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에는 가시덤풀이 자라고 여자는 애를 낳고 남자는 땀을 흘려야 살 수가 있었습니다. 애 다 키웠다고 안식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놓았다고 안식이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7일째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안식하셨을까요? 사람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6일 일하고 하루 쉬면서 무엇을 했을까요?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지만 교제하면서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믿고 세상에 사니까 맘이 편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믿고 사는 것입니다. 보통 신호등에 파란불에 가면 된다고 믿고 운전합니다. 물론 정신없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비행기가 잘 날아가겠지 믿고 탑니다. 그러다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여간 믿으니까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고 살지 않으면 무서워서 못삽니다. 태초부터 사람은 믿고 살아야 쉼이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휴식은 하던 일을 멈추고 원기회복을 위해 여유를 갖는 것이라면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쉼이다”라고 했습니다. 신학자 마르바 던은 “안식은 자신의 뜻과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요구와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수용할 때 마음이 편하고 쉼을 얻게 되는 증거가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부모님이 어떤 힘든 일도 감당해 내는 힘이 어디서 생길까요? 나라가 위급할 때 목숨을 걸고 나가 싸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소명입니다. 부모로서 소명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면, 나라의 국민으로서 소명을 바라 보고 받아들이면 사랑이 샘솟고 애국심으로 마음이 뜨겁고 그 어떤 위험에도 마음이 평온하고 담대해집니다. 교회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때 헌신하고 드리고 봉사하고 기꺼이 바치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부르심의 소명이 없으면 자기 맘대로 살다가 하나님과 멀리 떠나고 악하고 피곤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고 우리에게 또 세상에 보내시면서 가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분부한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살면서 안식이 없이 피곤한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알고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7월은 복음으로 안식하고 새로워지는 달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이 다스림을 받을 때 참된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안에서 안식을 놓치지 마십시오. 육신도 마음도 영혼도 안식으로 새로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