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우리교회에서 한글학교디렉터를 했던 목사님과 사모님을 한인마켓에서 만났습니다. 근황을 물어보니까 곧 멕시코 선교사로 떠났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스코틀랜드배경의 미국장로교회에서 파송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이들 사랑이 많으시고 열심히 특심이셔서 우리 교회가 여유가 있었으면 한글학교를 계속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그래도 미국분들은 저분들의 중심을 보셨구나, 하나님은 이렇게도 쓰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좋은 분들을 만났다고 감사하는 그분들과 대화하면서 제 마음에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또 우리도 못하는 선교사파송을 미국분들이 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앞으로 우리 한인교회가 더 많이 기도하고 부흥해서 우리 힘으로 선교사님을 많이 파송해야겠습니다. 더 놀란 것은 그 아들입니다. 한글학교에서 본 그 아이는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거의 통제불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어려 보였지만 많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고는 꾸뻑 배꼽인사를 하며 한국말로 똑바르게 안녕하셨어요, 목사님하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의젓해진 그 모습에 놀라면서 제가 사람을 겉으로 보지 말고 끝까지 잘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사람은 결과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동기를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보이는 것에 휘둘리는 믿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영적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다른 백성들은 골리앗의 외모를 보고 벌벌 떨고 숨어 있었을 때 다윗의 중심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외모로 외모를 보면 덩치 큰 외모가 이기고 왜소한 외모는 기가 죽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중심으로 골리앗을 보니 그 중심이 짐승인 것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블레셋사람은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나중에 골리앗이 말했던 말이 증명합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전에 양을 칠 때 사자와 곰과 같은 짐승과 싸울 때 하나님이 구해주시고 승리한 것처럼 짐승에 불과한 골리앗에게 내가 믿는 하나님이 똑같이 승리케 하실 것을 다윗은 믿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름을 부은 자였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손을 대는 것도 금했습니다.

다윗은 살인과 간음죄를 범한 자신의 잘못을 얼마든지 감추고 무마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왕이었지만 나단선지자의 책망에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다고 회개했습니다. 다윗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만 말하지 않고 행동하는 믿음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주실 때 대충 대충 신앙생활을 하거나 기회를 주실 때 건성으로 지나치지 않고 철저히 훈련받고 준비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꾼으로 살려면 피나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는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어떻게 돌이 이마에 박혔을까요?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졌을 때 대충 던졌는데 운이 좋게 맞았거나 하나님의 손이 돌을 붙잡아서 정통으로 맞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사자나 곰이 양을 물어 가면 기필코 쫒아가서 구해냈고 백발백중으로 한방에 물리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갖추도록 훈련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충 일하고 건성으로 살다가 대박 터지는 것을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다윗같이 중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삶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성도여러분, 다윗같이 하나님마음에 합한 백성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