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정도”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쟝발장이 신부님이 사는 집에서 은촛대를 훔쳐 도망가다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빵 한 조각 훔쳐 먹었다고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이제 꼼짝없이 평생을 감옥에 갈지 모르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체념한 그를 끌고 간 형사가 신부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은촛대가 여기서 훔친 것이 맞느냐고, 신부님은 아니요, 그것은 선물로 준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잊어버린 것이 있네요, 은그릇은 왜 안 가져갔냐고 은촛대에 은그릇을 얹어주었습니다.
그 때 쟝발장의 마음은 요동을 쳤습니다. 그동안 그가 살아왔던 생존의 방식과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이 부딛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순간에 마음의 결정입니다. 내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식을 쫒아야 됩니다.
저는 사춘기 시절에 그 쟝발장의 모습에 공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서 힘들게 살 때 그의 삶에서 동병상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 그냥 교회를 다니는 교회생활을 할 때도 쟝발장이 늘 맴돌았습니다. 기도도 내가 원하는 기도였고, 생활도 나의 유익을 좇는 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를 섬기니까 잘 봐주시겠지 생각했습니다. 철저히 나의 방식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사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만났을 때 왜 그렇게 괴롭고 부담스러웠는지 쟝발장의 마음을 그때서야 조금 알았습니다. 내 본성이 말씀에 부딛쳤을 때 마치 내 심장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칼처럼 많이 괴롭고 아팠습니다. 말씀 앞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 싫었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이 들려지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때 속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세상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있는 이기적인 본성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은혜와 용서를 주셨어도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고 삶을 돌이키지 않으면 내 유익과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새로운 삶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의 정도를 깨닫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도록 많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 잘잘못을 말하면 잠깐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갈등은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 복잡해집니다. 그 때마다 성경에서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붙잡고 의로우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살다보면 사람은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밉고 원망스러울 때 미운사람이 없어진다고 갈등이 해결되고 평화가 오지 않음을 기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게 하십니다. 나는 약하고 쓰러지고 낙심하지만 오직 그 사랑으로 원수도 이기고 세상도 이긴다고 약속한 말씀을 붙잡습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그렇다고 적자생존구조 속에서 남을 탓하고 나를 자랑한다고 해서 내가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말씀에 순종할 때 나를 높여주시고 존귀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도여러분, 율법과 죄와 미움이 우리를 옭아매지 않도록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을 꼭 붙잡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제가 수많은 훈련과 시행착오 끝에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꿈을 꾸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걸어가십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주시고 새롭고 축복된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