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행복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행복한 말과 행동을 하려면 우리 마음에 행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행동론자는 행복한 마음이 없어도 행복한 말과 행동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어느 말이 맞을까요? 둘 다 맞습니다.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닌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마다 행복해지는 순간은 저마다 다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행복은 하나님 자체가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기쁨이요.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행복과 다릅니다. 세상은 원하는 것이 채워지거나 이룰 때, 의미있는 일을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보통 행복해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원하는 것을 얻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행복한 걸까요? 혹시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즉 더 가지고 더 알고 있는 사람 옆에서 위축된다면 과연 내 행복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걸 얻기 위해 또 노력하고 애써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그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요? 마치 파랑새를 찾아 멀리 멀리 가는 인생이 아닐까요? 그러다가 인생 다 간다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행복론이란 책에서 그날그날 작은 일에 행복을 모르면 인생의 큰 행복도 맛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 행복도 젊은시절 짜증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살다가 젊은 날 다 지나고 쓴 책의 결론입니다. 일찍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행복은 주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주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이웃을 받아줄 때 커지고 나눌수록 더 커진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인 둘째 아들은 아버지안에 행복을 찾지 못하고 세상의 행복을 찾아 떠났습니다. 행복을 얻었나요? 못 얻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 어디있는지 알았습니다. 다시 아버지집에 돌아와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집에 계속 있었던 첫째 아들은 행복했습니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탕자로 떠난 둘째 아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쫓아내지 않고 받아주고 챙겨주고 잔치까지 해주니까 불평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첫째 아들조차 아버지가 행복인데 같이 살면서 행복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안과 희락이라고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행복자입니다. 그렇게 살 때가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