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쉰들러라는 공장주인이 당시 독일이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몰살하여 죽일 때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유대인을 자기 공장에서 일하게 빼돌림으로써 유대인의 생명을 살리려고 계획합니다. 쉰들러는 자기가 알고 있고 떠오르는 유대인의 명단을 작성하는데 그 명단에 올라가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가 된 것입니다. 한 사람씩 쓴 명단이 결국 1,100명이 되었고 그들은 다 목숨을 건집니다. 전쟁이 끝나고 쉰들러때문에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이 금을 모아 반지를 만들어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쉰들러에게 전한 반지에는 이런 탈무드경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자는 세상을 구한 것과 같다.” 예수님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영화에서 쉰들러는 이렇게 괴롭하면서 자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 앞에서 외칩니다.
“이 차.... 괴트한테 이 차도 팔수 있었을지 몰라. 내가 왜 안 팔았지? 열 명은 더 구했을 거야. 열 명... 그래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었어. 이 배지.... 이 배지로 두 명은 더 구할 수 있었어, 금배지잖아. 최소한 한사람 몫은 처 주었을거야. 내가 최소한 한 사람은 더 구할 수 있었을텐데..”
인도에 카스트제도가 있습니다. 유명한 간디는 기독교인이 될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학창 시절에 산상수훈의 말씀을 접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맞아 이거야 이렇게 살면 카스트 제도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교회에 갔습니다. 인도인은 피부가 거무잡잡해서 흑인처럼 보입니다. 교회에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못 들어가게 합니다. “당신 미사를 드리려면 저기 흑인들이 따로 모이는 교회에 가서 미사를 드리시오” 라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때 간디가 예 하고 흑인들만 모이는 교회에 갔을까요? 아닙니다. 간디는 그 교회을 떠났고, 다시는 교회문턱에 들어오지 않았고 영영 기독교를 떠나버린 겁니다. 한 사람이 그것도 인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뻔 했는데 그를 떠나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예수님이 낮은데로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가난한자 병든자 연약한자 편에 서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교회를 그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선교도 가난한 멕시코사람들 속에서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신앙생활의 핵심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