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니카라과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니카라과에 가면 선교팀이 사진사역을 할 때 온 가족들을 나름대로 빼어입고 다 데리고 나온답니다. 하루는 목회자신분증 사진을 찍어주는 사역을 하는데 그래도 목회자 신분증인데 넥타이 매고 정장을 입고 사진을 찍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넥타이까지 있고 나온 분이 몇 명 없어요. 수백명의 목회자분들이 왔는데 다 제각각 옷을 입고 오신 거에요. 어떻게 했을까요? 넥타이 매고 온 목사님이 자기 찍고 풀어서 다음 분에게 주면 그걸 매고 찍고 그렇게 다 돌려 매고 사진을 찍은 거에요, 또 양복정장이 어디있어요. 그래도 어디가나 한 두사람은 제대로 입은 사람이 있어요. 멋진 양복을 빼어 입고 오신 목사님이 먼저 찍고 어떻게 해요? 그 양복 벗어서 다음 사람이 그 양복을 걸쳐 입고 찍고 그 다음 사람이 또 찍고 한 양복, 한 넥타이 가지고 수백 명 목사님들이 다 찍은 겁니다, 그러니까 선교사님이 보기에 하도 안쓰러워서 뉴욕에 목사님보고 나중에 니카라과 오실 때 넥타이 좀 모아서 가지고 오라고 부탁했대요. 부탁받은 목사님이 교회에 가서 성도님들에게 말했대요.
성도여러분, 우리야 흔한 것이 넥타이 아니에요? 솔직히 여러분 집에 넥타이 몇 개나 됩니까? 아마 한번 매고 사용 안하는 넥타이가 많을 겁니다. 그중에 괜찮은 것 몇 개씩만 가지고 오세요. 그렇게 모아진 넥타이를 골라서 가지고 보내주었대요. 선교사님들이 현지인목회자들을 불러서 나눠 주었는데 너무 좋아하더랍니다. 여러분 마음에 드는 것 몇 개씩 가지고 가세요. 그런데 몇 개가 남았더래요. 뭐가 문제가 있나 하고 남은걸 보니까 메이드인 프랑스로 제일 좋고 비싼 건데 그건 빼놓고 안가지고 가서 현지목회자 분들에게 물어 보았데요. 왜 이 넥타이는 안 가져가요? 이거 비싼 거에요. 그런데 다들 아니라고 그건 싫다는 거에요. 이유는 색깔이 우중충해서 싫다고 남은 거에요. 넥타이 가치를 아는 선교사님은 저분들이 이 넥타이 가치를 모르니까 저런다고 웃을 수 밖에 없었데요. 하지만 넥타이 하나와 정장양복 한 벌로 수백명의 목회자가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을 통해 현지인 분들의 순수함과 서로 돕고 섬기며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 오히려 너무 많이 가진 우리들에게는 볼수 없는 가치를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힘써서 추구했지만 자족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래새파라는 가문의 지위가 있었고 혈통으로 알아주는 베냐민지파이었고 로마시민권의 자리에다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위로 예수를 믿는 사람을 찾아 핍박했습니다. 바울에게 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에요. 유대교를 위해 헌신하고 자기가 믿는 유대교가 이 세상에 퍼져가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걸 위해 엄청나게 힘썼는데 이상하게 만족이 없었습니다. 대신 열심과 특심만 있었어요. 그러나 어느날 자족을 알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이 사울아 사울아 부르실 때입니다. 내가 너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다는 예수님을 만난 순간 바울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기가 쟁취해서 얻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발견했어요. 이방인의 사도! 놀랍게도 다른 것을 할 때는 만족을 몰랐는데 예수님이 주신 그 자리에서 보람을 느끼고 자족하게 된거에요. 아!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리가 내 자리구나, 그 때부터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고부터 자족함이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자족이란 내가 서고 싶은 곳이 아니라. 주님께서 서라하는 자리에 섰을 때 비로서 자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